
제목:한 마디.
*언더테일 특정 루트의 스포일러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. 읽으실 때 유념 부탁드립니다.
“언다인…….”
나지막히 이름을 불러보았다. 면전에서는 차마 불러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. 어쩐지 속에서 무언가가 뜨끈거리면서 눈물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.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…….
알피스는 언다인이 나간 출입구 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. 30분 전까지만 해도 언다인은 알피스와 같이 있었다. 그러나 어느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. 밝게 반짝거리는 눈은 비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다. 로얄가드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언다인의 모습은 영웅다웠다.
그래서, 그래서 불안했다. 혹시나 저 얼굴을 보는 것이 마지막일 까봐. 다시는 보지 못할까봐.
-알피스.
-어, 어어어으으으응. 하하. 여기까지 그런 옷을 입고 어쩐 일인데?
언다인은 조금은 딱딱한 어조로 알피스를 불렀었다. 심장 한 귀퉁이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. 안 돼. 그렇게 날 부르지 마.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굴지 마.
그때 알피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, 모든 것을 모르는 채 했었다. 그렇게 히죽히죽 바보같이 굴며 농담하면 언다인이 저런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……. 바보 같은 대화를 좀 하다가 남은 괴물들을 대피시키면 되니까.
-지금 지하에 인간이 들어왔어. 알지?
-어, 으응 그랬었나.
-폐허, 스노우딘 근방의 모든 괴물들이 몰살 되었어. 파피루스도 죽었고. 그러니까 이제 그 인간을 막을 이는 나 밖에 없어. 그래서 말인데…….
-언다인…….
알피스는 말끝을 흐렸다. 그러나 그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‘제발 가지마.‘ 가 있었다. 참 이상하지. 근거는 없었지만, 불안한 느낌이 자꾸만 가슴 속에서 증폭 되었다. 필사적으로 가지 마라고 붙잡아야 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.
언다인은 그런 알피스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 씨익 웃어주었다. 제 딴에는 불안해하는 알피스를 안심시켜주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. 그러나 하나도 안심이 되질 않는다. 오히려 더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. 언다인은 뒷머리를 긁으며 계면쩍게 말했다.
-그, 그러니까 말인데, 난 널 제일 믿고, 너는 왕실 과학자니까. 혹,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야. 정말로 혹시라도 내가, 그럴 리 없겠지만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면 알피스 네가 여기서 내가 싸우는 거 지켜보았다가 남은 괴물들을 모두 피신시켜줘.
-…….
‘언다인, 무슨 말을 하는 건데.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.’
외침은 외침이 되지 못했다.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외침은 마음의 벽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생채기를 만들고 피를 냈다. 알피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.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.
저렇게 가면 잘못된다. 말려야 된다.
그럼에도, 알피스는 아무 말도,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. 온 몸이 석상이 되어서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. 지금 언다인은 결국 죽을 것을 각오할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. 그걸 알면서도 입 뻥긋 하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.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알피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.
-부탁할게. 너 말고는 부탁할 괴물이 없어. 이상하게 샌즈도 보이지 않고. 헤헤. 알지? 내가 너 제일 믿는 거.
‘그런 말을 왜? 지금? 이럴 때에 하는 거야? 싫어. 싫어. 싫어. 가지마. 가지마. 가지마.’
언다인은 석상이 된 알피스의 손을 꼭 잡았다. 오늘 따라 서늘한 언다인의 손이 칼날같이 느껴졌다. 간절하고 간절한 알피스의 외침은 굳어버린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. 아니, 나갈 수가 없었다.
제 손을 잡고 있던 언다인의 손이 빠져 나가고, 옆에 벗어두었던 투구를 집어 들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. 너무나도 바보 같게도, 그저 멍하니 선 채로 투구를 쓴 언다인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.
-아 맞아. 알피스 어, 사실 난 있지……. 어 그러니까 음……. 아냐! 다녀와서 말 하지! 그럼 다녀온다?
성큼성큼 걸어 나가던 언다인이 뒤를 돌아보았다. 우물쭈물 무언가를 말하려다 다시 몸을 돌렸다. 잡아야 된다.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. 꿀꺽- 하고 침을 삼켰다. 입을 뗄 것이다. 멍청하게 붙잡지도 않고 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.
-저, 저기…….
-응? 왜 알피스?
-그 그러니까, 어, 어....! 언다인! 있지…….
철제 투구사이로 알피스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. 말해야 돼. 말해야 돼. 수도 없이 중얼거렸지만,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.
나는 이렇게나 무력하고,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. 가지 말라. 말 한마디도 못하고…….
